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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시 - 2009-11-11 10:32:42
UGN경북뉴스 창간5주년 특별대담 - 소설가 이문열
 

 소설가 이문열과 최성달 작가의 대담
본사는 창간 5주년을 맞아 소설가 이문열씨와 특별대담을 가졌다. 최성달작가가 직접 경기도 이천에 있는 이문열씨의 댁을 방문해 이뤄진 이번 대담에서는 4시간 걸쳐 문학과 인생 등 주요 관심사에 대해 폭넓은 대화가 오고갔다.

다음은 소설가 이문열과 최성달 작가 간에 주고받은 일문일답이다. 

최성달- 작년 이맘 때 UGN경북뉴스 창간 4주년 특별대담으로 찾아뵙었으니 정확히 1년 만에 다시 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이문열-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불멸의 안중근 취재차 중국을 갔다가 어제 돌아왔습니다. 하루하루 연재물 쓰기에도 빠듯하지만 짬을 내어 더러 강연을 다니기도 합니다.

최성달- 인생역정을 보면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학 사범대학에 입학했지만 다시 중퇴를 하는 등 학창시절부터 파란이 있습니다. 학교를 끝까지 다니지 못한 이유가 아버지의 월북 등 가족사와 관련이 있습니까?

이문열- 광란의 세월을 지혜롭게 살아가려는 어머니의 의도가 작용한 결과입니다. 아버지가 월북한 뒤 어머니와 우리 가족은 경찰의 눈을 피해 여러 번 이사를 다녔습니다. 시골 보다 도회지에 오래 머문 것은 그곳이 좀 더 안전하다는 어머니의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그때는 야밤에 몰래 이사를 하면 주민등록 제도가 완비가 덜 된 시절이어서 경찰이 찾아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은 그나마 마음은 조마조마해도 시달리지 않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학창시절 정규교육은 또래들과 3년을 보낸 반면 7년은 아웃사이더에 있었습니다. 이  꿰도를 벗어난 시간들이 문학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최성달-선생님의 소설가로서의 삶은 이러한 가족사와 결부지어 운명 지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소설의 모티브와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은 고단한 삶의 여정을 글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여 지는데 선생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문열-원론적으로 말하면 소설이든 자전적 양식의 소설이든 개인사 부분이 뒤 섞이게 되어 있습니다. 가끔 오해 받는 것 중에 하나가 소설의 거의 대부분을 가족과 관련된 ?자전적 요소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계량하자면 발표작 중 3분의 1이 이러한 경향의 소설이라면 나머지는 순전히 저의 상상으로 채워진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최성달- 김병연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시인’은 김삿갓의 아들이 아버지 김병연과의 불화를 해소하는 방편으로 아버지를 시인으로 받아들이면서 이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선생님의 월북한 아버지와의 화해의 코드로도 읽히는데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이문열-소설을 쓸 때의 의도는 그러했지만 실제 아버지의 삶이 순조롭지 못해 ‘시인’의 내용처럼 화해가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은 김삿갓의 아들이 아버지를 시인으로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과 만족을 얻을 수 있었지만 저 같은 경우는 아버지의 삶 속에서 그러한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승인의 조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아요. 아버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북으로 갔지만 포부와 확신을 실현할 기회를 갖지 못했어요. 남한에 있던 그 많은 것들을 버리고 신념 하나로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대가치곤 너무 가혹했는데 남로당 계열로 몰려 숙청당하고는 삶의 후반부를 아주 비참하게 보냈습니다.

최성달- 모든 글 쓰는 자가 선생님 앞에 굴복해야 한다면 그건 첫째가 문체고, 둘째는 문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글은 우선 묵직합니다. 정신이 가벼운 자는 흉내 낼 수 없고, 내면이 가득차지 않고서는 구사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소설을 먼저 읽고 아무리 이름난 소설가의 책을 읽어도 가슴에 꽉 차지 않은 허한 빈틈 때문에 읽기 거부할 정도로 만들어 버리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전 이것이 설명하기 힘든 삶의 과정에서 체득한 유구한 정서가 글쓰기에서 문체와 문장으로 대체되거나 전환되었다고 보는데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이문열-그런 기대와 희망이 있는데 문장과 문체에서 감동이 있던가요? 실은, 소설가 이 전에 문장만은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나름대로 문장 연습 많이 했어요. 예술적 문장이 아니라 신념을 표출하고 정신으로 살려는 목표 하에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서의 관심이었습니다. 그 시가가 있었고 소설로 밥 먹고 사는 일은 그 나중에 이뤄졌습니다. 

최성달-예술추구의 방법론을 내밀하게 다룬 금시조에서 받은 인상입니다만, 전, 선생님의 내면을 깊숙이 지배하는 관념 가운데 하나가 유교적 이상 인간의 모델인 군자 선비 성인 산림처사의 지향이 가슴 속에 숨겨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금시조가 예술의 지향 가치를 논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론 그 속에 그것을 포괄한 인간의 삶의 방식의 거대한 구조, 즉, 차원을 달리하는 형의상학의 세계를 보여주려고 했고, 그 속에 더 많은 메시지와 방점을 찍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이문열- 작가 노릇하면서 변하지 않는 것과 본질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 때문에 제 소설이 관념적으로 보일 거예요. 그런데 더 이상 이런 관념적인 소설이 유효한 것인가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어요. 소설로 교훈을 주는 충고자에 대해 독자의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 않겠어요. 관념으로 가득하다 보면 내 진실만 있고 상대에게는 거북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다른 시각에서 보면 요즘 세태가 감각과 외형, 표면적인 것에 정신을 빼앗겨 보이지 않는 것, 근원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를 않아요. 앞으로 제 소설에 문체 변화가 있다면 이러한 고민에 대한 대응이고 타개책이라고 이해를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최성달-전 선생님이 품은 의문을 스스로 소설 속에서 제기하고 해소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첫째, 지적 호기심이 남달라야 할 것이고, 둘째, 독서량이 뒷받침 되어야 밀도 높은 의심과 해답이 제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왕성한 지적 호기심의 배경과 독서량이 궁금합니다. 

이문열-한 때 독서에 대한 자부심 있었어요. 지금도 책이 쌓여 있는 서고를 떠나서는 글을 쓰지 못해요. 글이 막히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서고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하게 외우지는 못해도 읽고 난 후 그 내용이 어느 책 어디쯤 있다는 것만 알면 의문은 해결이 되죠. 박학다식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유형에 속해요. 그런데 사회가 디지털시대로 진입하면서 변화가 생겼어요. 굳이 어느 책, 어디쯤에 있는지를 몰라도 궁금증은 인터넷 자판을 두드리기만 하면 모두가 해결이 되잖아요. 이 때문에 독서라는 개념이 이제는 종이 위에다 문자를 기록하거나 인쇄한 대상물이라는 한정에서 영상물, 인터넷 등으로 다양화 된 것 같아요.

최성달-선생님의 소설은 그야말로 시공간과 영역을 망라하며 다방면에 관심을 표출하여 왔습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는 절대권력의 허구성을 폭로했고, ‘사람의 아들’에서는 신과 인간의 문제를 밀도 있게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젊은날의 초상에서는 청년기의 방황과 고뇌를 성숙하게 극복하는 모습을 통해 구도적 삶을 그렸고, 대하소설 변경은 한국전쟁이후의 가족사 총체적으로 재구성했으며, 선택은 정부인 안동장씨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표상으로서의 여성 롤 모델을 세우려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아우와의 만남은 통일로 가는 접근 방식의 한 예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소설에서 보여지는 일관성은 매번 선생님에게 축적된 내면의 소리를 통찰로 환원한 후 그것을 여실하게 글 속에 투영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 앞이라서 빈말이 아니고 세계의 어느 소설가와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는 이문열만의 색깔과 정체성을 우뚝 세운 작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만하면 사실, 선생님의 보수를 두둔하는 발언만 지워버리면 노벨문학상을 받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문열-82년도에 처음 번역이 되었어요. 이후 60여권이 영국 미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출판이 되었습니다. 20여 년 동안 꾸준하게 이 작업을 했지만 총 50만권이 팔리지 않았어요. 무척 초라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노벨상이 문학적 세계화에 한 축이 된다고 여겨 이런저런 공을 들였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 문학적 성향이 번역과 크게 들어맞지 않는 것 같아요. 한국작가들의 공통적 고민이겠지만 음악가와 화가가 언어 장벽 없이 막 바로 소통하는데 반해 소설은 언어적 소통이 가장 높게 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일단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외국의 언어 엘리트층이 두껍게 형성이 되어야 해요. 이들이 우리나라를 문화로 접근하고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문학적으로 우월하다고 하여도 텍스트와 번역이라는 장벽은 이것 말고는 달리 해결할 방도가 없어요.

최성달-사색이라는 책은 어떻게 출간이 된 것입니까? 소설가로서 사색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빼앗기면 정작 창작하는데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요.

이문열-사색은 그동안 쓴 책의 내용 가운데 골라서 따로 한 권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그 내용이라는 것도 일부러 사색을 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적어다기 보다는 비슷한 유의 명상록을 수집해놓고 그것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을 제 나름대로 정리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최성달- 관념적 소설을 추구하고도 인기를 누리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이문열- 문학이 관념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자칫 황당무계로 흐르거나 그것이 아니면 난해함으로 빠져 예술성은 있되, 독자와의 소통에서는 실패하기가 쉬운데 제 경우에도 독자들이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것으로 이해를 하여 감동을 준 것 같아요. 아마 이러한 예는 아주 진귀한 예로 분류해도 될 것 이예요. 관념이 깊이 내재된 소설일수록 독자가 어렵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정신으로 풀어낸 사물과 대상들에 대한 형상화의 구조가 치밀하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힘들죠.

최성달-이제는 시대와의 불화를 치유해야 될 시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차원 높은 선생님의 정신의 세계를 퇴계나 주희처럼 편지형식으로 기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식 같습니다. 

이문열- 부악문원에서 창작 수업을 받은 제자가 50여명 되는데 한 사람이 한가지씩의 질문을 하고, 제가 그 물음에 답한 책을 내자는 제자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지금껏 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대와의 불화라는 말은 제 발언을 두고 한 말 같은데 문학외적인 일들에는 이제 가급적 관심을 줄이고 최대한 소설가로서 글쓰기에 몰입하려고 합니다.

최성달- 고향인 영양에 광산문학연구소를 개소해 두셨는데 고향영양은 선생님 문학에 어떤 의미입니까?

이문열-돌아가야 할 바의 근원 같은 곳으로 이해를 하시면 될 겁니다. 제 문학 곳곳에도 고향에 대한 색채가 녹아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은 지금쯤 돌아가야 하는데 금방은 힘들 것 같아요.

최성달- 예전에 잠시 세종대에서 학생을 가르치시다가 본업인 글쓰기로 돌아가신 적이 있는데 올해 다시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문대학 석좌교수로 강단에 서셨는데요. 제자 기르기의 일환인가요, 아니면 직접 소통의 방식으로 선택을 하신 겁니까?

이문열-있는 그대로 보시면 됩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것들을 소설로 돌려주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축적된 것을 직접 전달하는 방식도 소설가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학교 측의 제의를 수락한 것입니다.

최성달-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황준오 기자/ 기록 정리 신윤미 기자

  2009-11-11 10:32:42 / UGN 경북뉴스(ugnews@ug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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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의견 - 총 1건의 독자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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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iaolin 2011-04-14 오후 4:55:52 [수정] [삭제]
a>链接: 联通卡刷钻 链接: QQ刷钻

영주시장의 장인 권상목 님께서 2020년 4월 14일 병환으로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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