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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시 - 2009-07-14 20:11:25
"길에서 만난 단상"
권준, 퇴계오솔길 한(韓)문화 기획전(14)
 

중견화가 권준 선생이 '퇴계오솔길'의 사계절을 가을부터 익년 여름까지 이어가며 주변풍경을 화폭에 담고, 매월당문학상 시나리오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작가 최성달이 권화백의 그림을 글로 야심차게 표현한다. 이번 기획연재는 2009년 1월에 시작하여 매달 초순과 보름에 연재되며, 1년간 계속된다.


프랑스의 언어학자 소쉬르는 세계가 곧 언어라는 것을 갈파한 사람이다. 언어가 늘면 세계는 확장된다.
소쉬르의 이 공식은 어쩌면 언어보다 길에 더 정확하게 적용된다. 세계는 곧 길이다. 길이 늘어나고 확대된 만큼 문명이 뒤따랐다. 이것이 인류가 걸어온 역사다.

문명은 인간이 무(武)와 문(文)의 길로 걸어간 결과물이다. 무력을 통한 끊임없는 욕망의 추구는 수많은 이들의 피의 제단 위에 부족과 국가를 세우고 국가를 넘어 거대한 제국을 탄생시켰다.
알렉산더의 정복사가 그러하고, 카이사(시저)는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하게 했다. 실크로드 넘어 대제국을 건설했던 징기스칸의 몽골제국도 예외는 아니다.

길은 전쟁사였다. 모순 같지만 파괴와 살육은 멸(滅)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을 태동하는 생성의 힘이기도 했다. 인류사의 긴 흔적에서 문화의 전파가 평화적 교류로도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확인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파괴적 침투에서 평화적 교류로 전환된 것은 길을 통한 이동의 수단이 원활해지고 가공할 무기가 인류를 위협하면서부터다. 그 이전에는 문화의 가장 빠르고도 효과적인 침투와 전파는 전쟁이었다.

지상의 모든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순수 선(善)의 발동이 아니라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강력한 욕망의 의지로 가능했다. 그로부터 바다 길이 열리고 하늘 길도 무한대로 열렸으며, 마침내 인류는 지구 밖의 길마저 개척하는 시대를 맞았다.

아직도 길을 연자가 세계의 주인이 된다는 정칙은 변함없는 진리인지 모르나 세계는 예전에 비해 많이 복잡해졌다. 문명의 이기가 고도로 발달하기 전 인류는 빠르고도 잔인하면 길의 주인이 될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빠르고 강력한 것을 잘못 휘두르면 모두가 공멸하고 만다. 미묘한 복잡계 속에 길이 놓여 있는 것이다. 길이 그리 쉽게 잡히지 않은 곳으로 달아나 버렸다.

개인적으로도 길은 자신의 확대를 의미한다. 길 따라 나선 길에 무수한 사물과의 만남은 나를 더 넓은 세계로 확장시킨다. 길은 닫힘이 아니라 열림이고 끊어짐이 아니라 이어짐이다.
그곳에 사상과 학문과 문학이 있다. 독서와 사색을 통해 길러진 고양된 교양은 길을 통해 전해지고 받아들여진다. 스승이란 자신이 이룩한 광대의 인식의 지평을 후학에게 전수한 사람을 말한다.

  ▷ '인간의 길'(40cm×74cm)                                                                              Oil on canson pape

퇴계는 길의 남자였다. 고요히 걸으며 사색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사색이 만개하는 시간 직관이 세상사의 한 흐름을 포착했다. 퇴계는 그 포착된 세계를 다듬고 다듬어 영원불변의 진리체계로 만들려고 했다.

그의 사상은 도덕이라는 인자의 위에다 종교성을 씌워 인류가 걸어갈 삶의 지표로 설정이 되었다. 인류가 시지프스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 매번 일상을 단속해야 하는 어리석은 처지를 면하지 못하는 다음에야 퇴계가 제시하고 목표한 사상의 외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철학일 수밖에 없다.

나는 권준이 저 길 따라 걸어가는 퇴계를 그린 풍경에서 역사의 어제와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읽는다. 소쇄(小?)한 인간이 일군 사상의 경지가 어떻게 인류사에 전파되고 오늘의 역사가 되며 인간 개개인의 삶에 투영되는지 곰곰이 되짚어 본다.

그리곤 묻는다. 과연 한 인간의 선한 의지가 거대한 구조주의에 맞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역사는 이러한 선의지(善意志)에 대답을 했는가?

인간과 인간이 모인 집단의 무한정의 욕망을 이타심으로 회귀시키는 키워드는 선의지인가?
어려운 문제고 간단하게 대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난, 이러한 인식의 지평이 인류를 존속케 하는 어떤 힘이라는 사실에 긍정을 한다.
인간 욕망의 의지를 안정적 구조에서 바라보게 하는 힘이란 지평이 열린 인식과 인식의 연대가 위험한 구조주의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것은 아닐까?

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단위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이 부딪칠 때 무력이 아닌 토론과 협상으로 해결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무력의 우위를 점하고도 대화로 쟁점을 해결하는 방식은 진화의 증거가 아닌데도 말이다.

무력을 피하고 대화방식의 선호는 인류의 최근세적 경향이다. 이건 유전자 속에 저장된 프로그램이 아니다. 판단여하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동정의 양면처럼 언제든 꺼내들 수 있는 카드다.

그런데도 무력이 최대한 억제되는 이면에는 인류의 오래된 문화축적의 힘이 작동하는 결과일 것이다. 어쩌면 집단의 이익도 양심이라는 가치체계의 최후보루에 의해 때론 저지되고 조종되는 것인지 모른다.

양심이란 그윽이 살피면 그것이 이타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타심은 오로지 타인으로 향하는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이다. 이타심의 원류와 저변을 파고들어가 보면 결국 그것은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희생이 자신에게 어떤 보상으로 주어진다는 체계 안에서 세워진 관념인 것이다.

이 관념의 흔들림 없는 인식의 체계를 퇴계는 경학과 마음공부로 획득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획득한 체계를 집단에 주입시켜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다. 그에게 배움을 청한 제자는 요즘으로 말하면 지성이다.

지성이 말해야 할 사안에 침묵하는 것은 일신의 안위와 신상의 두려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침묵하는 것이 통찰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곤 지성이란 하나에서 전부를 연결하여 전후의 미칠 파장과 영향력을 한 눈으로 파악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한 능력을 갖고도 개인을 위해 또는 잘못된 신념으로 침묵했다면 죄악이 되는 것이다.

퇴계학맥을 이어가는 집단 내에서 이 관념을 무너뜨리는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신을 던진 구국의 인사가 무더기로 배출된 데는 이러한 흔들림 없는 양심의 체계, 가치의 체계가 굳건히 유풍과 학문적 전통으로 이어져왔다는 반증이다.

이 그림은 단순히 한 인간이 걸어가는 모습을 풍광 속에 배치를 한 것이지만 거대담론이 채색 속에 녹아 있다. 무형의 원형문화가 아직도 면면히 숨 쉬고 있는 까닭에 안동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를 칭할 수 있는 배경을 웅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2009-07-14 20:11:25 / UGN경북뉴스(ugnews@ug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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