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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시 - 2009-07-17 18:12:45
"길에서 만난 단상(2)"
권준, 퇴계오솔길 한(韓)문화 기획전(15)
 

중견화가 권준 선생이 '퇴계오솔길'의 사계절을 가을부터 익년 여름까지 이어가며 주변풍경을 화폭에 담고, 매월당문학상 시나리오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작가 최성달이 권화백의 그림을 글로 야심차게 표현한다. 이번 기획연재는 2009년 1월에 시작하여 매달 초순과 보름에 연재되며, 1년간 계속된다.


  ▷ '퇴계오솔길'(40cm×74cm)                                                                           Oil on canson pape

이 그림을 보니까 불현듯 떠오르는 것 이 있다. 실경을 스케치하기 위해 권준과 시도 때도 없이 오르내렸던 도산구곡 길. 글 쓰고 영화 만들고 싶은 욕심에도 부지런히도 다녔다. 두 해 동안 참으로 이 땅을 얼마나 속절없이 헤매고 다녔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고 덤벼들었으니 속절없음은 피해갈 수가 없었으나 영 소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걸으면서 도산구곡 길의 산수를 맘껏 구경하는 호사를 누렸고, 권준이 실경을 그린 화폭 속 풍경에 도취되어 구름 위를 거닐듯 꿈같이 보냈던 나날의 시간은 황후장상의 권력보다도 달콤했다.

비애가 가슴 한 편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기분을 누가 알랴. 배고프더라도 자식에게 글 쓰고 학문하라고 말한다면 믿으랴. 나 스스로 느끼는 감흥은 다른 것에 있지 않다. 도산구곡 길에서 보배로운 정신을 발견했다는 기쁨이고, 문화적 유전자의 전승에 뼈를 묻는 이들을 만난 희열이고, 여기에서 작지만 내가 뭔가를 했다는 자부심이다.

난 뭔가를 해보고 싶었다. 적어도 맘껏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움은 아니어도 신심과 진정성이 있다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길을 걸으면서 숨겨진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고, 영화로도 만들고 싶었다. 어설픈 앎을 갖고 도산구곡을 입에 달고 살았다. 빠듯한 시간에도 그림 해석을 게을리 하여 시간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솔직히 좀 잘난 척 고백한다면 가슴에 열정을 품고 외치고 뛴 것들은 내 방식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하나 같이 이루어졌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이리 설치고 저리 헤매는 사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으나 비슷한 유형의 영화가 제작이 되었다.

도산구곡을 제작하겠다고 언론에 장문의 인터뷰를 했더니 KBS 느티나무 제작진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 기사를 보고 연락한 그들은 ‘퇴계가 사랑한 청량산’에 출연해 달라고 했다.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거절했던 것은 내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그 꿈을 아직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타인에 의해 문화가 확대 재생산되는 촉매제 역할을 했으니 이것도 작은 보람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권준퇴계오솔길韓문화기획전은 권준 화백이 경북도 지방예술공모 미술부문에 제출하여 3천만원을 지원받았으니 부족한 글이나마 역할은 어지간히 한 셈이다.

도산구곡문화연대는 그렇게 창립된 것은 아니지만 권준과 함께 이 작업을 시작한 이래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줄기차게 외쳤다. 애정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안동에도 킬러 콘텐츠가 스토리텔링으로 탄생했다.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용수사에 가보라. 이제 시작인데도 하루에 관광차가 30대 이상 전국에서 물밀려오듯 들어온다. 나는 ‘한 가지 소원을 꼭 들어주는 탈북돌부처’를 스토리텔링하면서 이걸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

글 내용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앞으로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용수사는 경주의 불국사와 대구 동화사의 갓바위를 능가하는 문화콘텐츠의 산실이며, 스토리텔링이 성공한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한 예가 될 것이다. 입시철이면 전국에서 자식의 소원을 이루려는 부모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릴 것이며, 평시에도 소원이 있는 사람은 용수사를 찾을 것이다. 안동과 용수사 모두 살 수 있는 길이 단 몇 줄의 스토리텔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마 믿지 못할 것이지만 틀림없는 진실이고 사실이다.

권준과 내가 도산구곡 길을 걸어간 것은 그가 그린 오솔길 걷는 한적한 그림처럼, 사색과 유산을 위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 길에서 우리는 한국정신의 원형을 발견했고 참살이 문화를 찾았다. 진정 도산구곡이 보배로운 것은 풍광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이곳에 선현의 정신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 '안동도산구곡 길'(40cm×74cm)                                                                   Oil on canson pape

길 따라 물길이 흐르듯 사람 따라 굽이굽이 휘어진 곡(曲)들이 숨을 쉬고,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 따로 서 있거나 노니는 법 없는 이곳이 청정함으로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영혼의 요람인지 도산구곡 길을 가 본 사람은 안다.

선경이 선인을 불러 도산구곡이 되었듯, 예로부터 이곳은 산하(山河)풍광을 집안으로 들여, 합일하고 전일하려 했던 마음이 집집마다 그림 속 풍광을 연출한다. 

댐이 들어서 지형에 가해진 작위의 몸살 때문에 한 가닥 애련이 없는 것은 아니나 서린 이야기보따리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금방의 울적함을 정겨움과 따스함으로 되돌려놓는다.

도산구곡 길은 은일의 땅이다. 현자가 찾아들어 한 세상 도학으로 풍미하기에 이 보다 좋은 곳은 없다. 강과 나지막한 야산을 따라 고르게 널려 있는 들은 포근한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기만 하여 너그러움 기질을 배태하는 원천이다.

예로부터 이곳이 거친 투박함이나 번다함을 물리고, 정제된 고요함을 고르게 배양할 수 있었음은 자연이 주는 은덕이었을 것이다. 도산의 산야는 험한 웅장함으로 사람을 복종시키지 않는다. 준산(峻山)이 주는 위용의 경외감이 이곳에서는 산과 자신이 하나라는 일체감으로 대체된다.

그렇다고 이곳의 산이 무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지만 너르게 펼쳐진 산은 사람의 기운을 누르지 않되, 속으로 품은 강단이 이곳 선비를 닮았다.

도산을 지나면서 강은 비로써 강다운 강이 된다. 이 일대에서 가장 높다는 청량산 장인봉에서 삼남을 굽어 도는 낙동강을 바라보면 아득하면서도 무량하지가 않다. 무량하여 마냥 흩어질 것 같은 모양새가 아니라, 곡(曲)마다 모였다가 사연을 한 움큼 쥐어준 뒤에야 흘러간다. 한적하되, 스산하지 않고, 고요하되 무료하지 않으며, 유장하되, 속절없지가 않으니 강마저도 도를 이루었다.

도산이 인물을 배출하는 땅이 된 것은 이러한 환경을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답답하지 않은 정도의 적당한 터전은 공부하고 수양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농암종택과 용수사에 만난 문화사학자 신정일은 퇴계오솔길(녀던길)을 걸어 본 뒤 꿈속에서도 걷고 싶은 길이라고 했다. 퇴계는 이 길을 걸으면서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화는 그러니까 퇴계가 그렇게 소망했던 그림 속으로 실제 들어가 있는 형상이다. 퇴계는 생전에 한 점의 초상화도 남기지 않았다. 자신의 얼굴과 형상을 화가의 붓질에 맡기지 않고, 직접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들어가 그림이 되었다. 자연과 하나가 되었으니 산수에다 자신을 담아 놓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 각인된 형상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그림이다.

  2009-07-17 18:12:45 / UGN경북뉴스(ugnews@ug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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