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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시 - 2022-11-21 15:56:29
한국국학진흥원 2022 기탁문중예우홍보특별전
한양조씨 옥천문중 '빙옥처럼 깨끗하고, 화살처럼 곧아라'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11월 22일(화) 2022년 기탁문중예우홍보특별전 한양조씨 옥천문중 '빙옥처럼 깨끗하고, 화살처럼 곧아라'를 개최한다.

 

한양조씨 옥천문중을 중심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기탁문중에 대한 감사함과 기탁자료의 소중함을 널리 공유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옥천 조덕린으로 대표되는 한양조씨 옥천종택은 고서, 고문서, 목판, 서화 등 2,000점이 넘는 귀중한 자료를 기탁하였다.

옥천 조덕린, 소임을 다한 직언으로 시련을 겪다

지조와 절의로 상징되는 옥천 조덕린은 외가인 하회에서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의 가학을 이어받았으며, 갈암 이현일의 학문을 계승하였다. 문과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에 부름을 받았으나, 대부분 사양하고 학문에 전념하고자 했다. 1725년(영조 1) 당쟁의 폐해를 논하는 10개조의 상소를 올렸다가 68세 고령으로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길에 올랐다. 정미환국으로 유배에서 돌아온 조덕린은 이인좌의 난이 발발하자 경상도 호소사가 되어 전란을 평정하는 데 앞장섰다. 이때의 공적으로 여러 관직이 제수되었지만, 낙향하여 학문에 몰두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1736년에는 서원의 남설을 반대하는 소를 올려 노론의 탄핵을 받았고, 이에 제주로 귀양가던 중 강진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옥천의 신원을 위한 후손들의 끊임없는 노력

당쟁의 희생이 되어야 했던 조덕린의 복권은 오랜 기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들 초당 조희당과 손자 조준도, 운도, 술도 등은 출사를 단념하고 학문에 전념하는 한편, 조부의 신원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이에 옥천문중은 대를 이어 영남 남인으로서 학문적 위상을 더해갔고, 조부의 신원을 위해 번암 채제공, 다산 정약용 등 근기남인들과 교유하며 학문의 폭을 넓혀갔다. 그러던 중 1788년 정조가 조덕린의 관작을 회복시켜주었다. 하지만 1803년 다시 노론이 집권하면서 조덕린의 직첩은 또 한 번 환수되었고, 그의 후손은 다시 선대의 신원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마침내 1899년(고종 36) 복관이 이루어졌으니, 조덕린이 처음 종성으로 귀양 간 이후 175년 만의 일이었다.

얼어붙은 푸른 시내, 주실마을에 다시 흐르다

옥천문중의 가학의 계승은 주실마을의 다양한 공간에서 전해지고 있다. 조덕린이 주자의 창주정사(滄洲精舍)를 모방하여 지은 창주정사는 창주잡영(滄洲雜詠)과 함께 전해지며, 조술도의 후학양성을 위해 지은 미운정(媚雲亭)은 만곡정사(晩谷精舍)로 계승되고 있다.

조운도가 발의한 월록서당(月麓書堂)은 후진양성을 위해 인근의 한양조씨, 야성정씨, 함양오씨 등이 주축이 되어 건립했으며, 이곳에서 후진을 양성하며 주실 한양조씨만의 독특한 학문체계를 갖추어 나갔다. 또한 근기남인과의 교유를 통해 선진적인 학문의 폭을 넓혀 나갔다. 이후에는 개화사상을 수용하여 근대교육을 실천하는 등 선구적인 학문 활동을 펼쳤으며, 개화운동, 의병운동, 독립운동 등을 견인하며 조덕린의 강직한 지조정신을 이어나갔다.

한양조씨 옥천문중의 귀중자료, 4부의 기획으로 선보여

전시는 '1부 한양조씨, 영양 주실의 문호를 열다', '2부 옥천, 빙옥 같은 지조의 삶을 살다', '3부 옥천의 신원을 위한 후손들의 끊임없는 노력', '4부 누대에 걸쳐 지켜 온 옥천의 정신'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는 평소 만나보기 힘든 귀중 자료가 다수 전시된다. 옥천 조덕린의 1725년 상소의 초안인 '사면사간소'와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 초본 7점이 최초로 전시된다. 특히 '홍재전서'는 30질이 간행된 극히 드문 귀중 도서로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의 어제(御製)를 모아 엮은 문집이다. 여기에 옥천 조덕린에 대한 정조의 비답이 담겨있어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이외에도 옥천 조덕린이 '이인좌의 난' 때 영조로부터 하사받은 장검(長劍), 조덕린의 관복에 있던 흉배, 거문고 등 다채로운 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정종섭 원장은 "혼란한 정세 속에서도 오직 나라를 위해 직언으로 소임을 다했던 조덕린의 모습은 큰 울림을 준다. 이번 전시를 통해 조덕린 선생의 빙옥같이 깨끗하고 화살처럼 강직한 지조의 모습과 그 뜻을 면면히 이어온 한양조씨 옥천 문중의 이야기를 통해 지조있는 삶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기타 자세한 사항 및 관련 문의는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누리집(www.koreastudy.or.kr/cfseum)또는 유교문화박물관(☎ 054-851-0800)으로 하면 된다.

   <전시유물>

▲ 사면사간소 辭免司諫疏 (기탁 - 한양조씨 옥천종택)

조덕린이 1725년 10월 사간원 사간에 임명되자 이를 사양하면서 올린 「을사십조소」의 초안이다. 조덕린은
비록 병 때문에 관직에 나아가지는 못하지만 사간이라는 언책言責을 맡았기 때문에,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군주라면 반드시 힘써야 할 시급한 과제 10가지를 상언하였다. 이 상소로 인해 영조는 탕평을 내세우면서
소론과 남인을 비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조덕린을 삭직하고 유배에 처하였다.

▲ 홍재전서 弘齋全書 (기탁 - 한양조씨 옥천종택)

정조의 시문집인 홍재전서는 1814년 정리자整理字로 30질이 간행된 극히 드문 귀중 도서이다. 정조는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창의하였던 인물을 기록해 둔 무신창의록에 조덕린의 이름이 있다고 하여 죄명을
씻어주었다. 또한 정조는 영조 말년에 과거에 급제했다가 조덕린의 손자라는 이유로 삭과되었던 조진도의
과거급제도 회복시켰다.

▲ 칼(무신난호소사) 劍(戊申亂號召使) (기탁 - 한양조씨 옥천종택)

조덕린이 이인좌의 난[戊申亂]때 영조로부터 하사받은 장검長劍이다. 나무함에 '옥천선조경상도호소사시유물
영묘무신玉川先祖慶尙道號召使時遺物英廟戊申'이란 글자가 기록되어 있다. 1728년 3월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
을 때 경상도 호소사로 활동하면서 이 칼을 사용하였다.

 

  2022-11-21 15:56:29 / 김태동 기자(tdongk@ug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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