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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시 - 2019-10-04 12:57:25
[우리 마을 이야기] 번성했던 옛 고을 '용궁현'을 찾아서
[안동시공동기획연재] 2019 안동·예천 근대기행(4)
- 용궁읍내를 지키는 오백 살 넘은 '황목근' 어르신
- 용궁시장의 고소한 역사 '시장제유소'
- 세월과 함께 저물어가는 '문화당'
 

2019년 안동예천 근대기행은 생생한 르포취재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다룬 '구술생애사'와 안동과 예천 두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생활사의 근간이 되는 '마을'을 테마로 한 '우리 마을 이야기'를 그려낼 예정입니다. 첫 번째 '우리 마을 이야기'는 번성했던 예천 용궁면으로 떠나보기로 합다.

-편집자

용궁읍내 ⓒ정형민

# 용궁 유랑기

예천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꼽자면, 용궁면의 회룡포와 용궁 순대국밥이 아닐까? 2000년에 회룡포가 TV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치르면서, 용궁 순대국밥도 덩달아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용궁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몰려들던 아주 크고 유서 깊은 고을이었다. 그 기원을 돌아보면, 고려시대를 거쳐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시대에 축산현 혹은 원산현으로 불리다가, 고려 현종 3년(1012년)에 용궁군으로 개칭되었고,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용궁현, 1896년에 다시 용궁군이 되었다. 그리고 1914년 구읍면과 신읍면만 용궁면에 남아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필자는 이번에 구읍면과 신읍면이 있던 읍내 마을을 중심으로 용궁을 유랑해 보았다.

916번 지방도. 예천군 지보면 ⓒ정형민

대동여지도(1861년, 출처:규장각). 중앙에 '용궁'이라고 적혀있다.

한적한 지방도로를 타고 안동에서 예천으로 넘어간다. 가을 들녘 풍경이 참으로 평화롭다. 첫 목적지인 낙동강 변에 자리 잡은 '삼수정'으로 향한다.

쌍절암 생태숲길에서 ⓒ정형민

올해 화창한 어느 봄날, 문경으로 이어진 지방도로를 따라가다가 '낙동강 쌍절암 생태숲길'이라고 적힌 안내 표지판을 보고 만나게 된 곳이다. 강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삼수정에 올라서니, 옛날 선비들이 무시로 찾아와 멋진 시를 읊던 모습이 그려진다. 삼수정 바로 앞에 웅장한 회나무 한 그루가 3백 년 가까운 세월을 안고 서 있고, 좌측 들녘에 소나무 군락지에 백로와 왜가리 떼들이 여여히 앉아 있다.

삼수정 ⓒ정형민

삼수정, 풍양면 청곡리에 있다 ⓒ정형민

삼수정은 오월이 가장 좋다. 뜨락에 야생화들이 만발하다. 제비꽃, 냉이꽃, 애기노랑토끼풀, 민들레… 긴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운 어린 생명들을 살피며 작은 뜨락을 사뿐사뿐 거닐어 보라. 왼쪽으로 강물이 굽이 돌아가면 삼강주막으로 연결되고, 그 너머 용궁 읍내가 자리 잡고 있다. 옛날 삼강 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용궁 읍내 시장으로 가고,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먼 길을 떠나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마을 사람도, 보부상도, 소도 함께 나룻배를 탔고, 삼강주막에서 짐을 풀고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잔 마시며 세상 소식을 듣곤 했다.

풍양면 삼강리의 삼강나루(출처: 강문화전시관)

왼쪽부터 황목근, 후계목, 정자가 나란히 섰다. ⓒ정형민

천연기념물 제400호 황목근 ⓒ정형민

용궁 여행의 최적기는 역시나 가을이다. 들녘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벼가 바람에 넘실대고, 길옆으로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춤을 추고, 하늘까지 청명함을 뽐낸다. 용궁 읍내에 들어서기 전에 오백 살이 넘으신 '황목근' 어르신을 먼저 뵙는다. 긴 세월 용궁 읍내를 지키며 터줏대감으로 살아온 팽나무다. 2000년에 종합토지 소득세를 납부했고, 황목근이라는 이름자까지 있으니 용궁에서는 가장 고령의 어르신이다. 그래서 정월 대보름이면 자정에 당제를 지내고, 7월 백중날에는 나무 아래에 모여 잔치를 벌인다. 곁에는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황만수' 씨가 후계목으로 지정되어 무럭무럭 커가고 있다.

용궁가축병원... 낡고 오래된 가게가 있는 용궁읍내 ⓒ정형민

이화세탁소... 낡고 오래된 가게가 있는 용궁읍내 ⓒ정형민

수다방... 낡고 오래된 가게가 있는 용궁읍내 ⓒ정형민

# 토끼와 거북이의 시간, 용궁역

미리 말하자면 용궁 탐방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한 마을이 이렇게 많은 감동과 이야깃거리를 간직하고 있을 줄 몰랐다. 제일 먼저 몇 십 년 세월의 모습이 공존하는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동아당약국 사거리를 기점으로 용궁역이 있는 서쪽으로 옛날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서,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가축병원, 세탁소, 전파상, 다방, 신발 가게, 자전차방, 당구장…. 몇 십 년의 역사를 간직한 가게들이 마을 거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4~50대라면 초등학교 다니던 코흘리개 시절로 돌아가 손에 20원을 쥐고 '뽀빠이'랑 '자야'를 사러 달려갈 때처럼 가슴이 설레지 싶다.

일신전파사 ⓒ정형민

용궁당구장 ⓒ정형민

용궁읍내 풍경 ⓒ정형민

그런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부터 든든히 채워야 하지 않겠나? 이곳에 와서 용궁 순대국밥을 먹지 않는다면 정말 손해나는 일이다. 용궁 순대국밥은 육수에서 깊은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인데, 여기에 연탄불에서 익힌 오징어 불고기를 함께 곁들이면 정말 좋다. 그래서 인터넷 블로그에 오징어 불고기가 단연 최고라는 글을 종종 볼 수 있다. 여행객들은 방송을 통해 잘 알려진 단골식당이나 박달식당을 많이 찾지만, 읍내 곳곳에 용궁 순대국밥을 파는 식당들이 꽤 많다. 필자도 순대국밥과 오징어 불고기로 배를 채우고, 먼저 용궁역으로 발길을 돌린다. 용궁역이 읍내 서쪽 끝에 자리 잡고 있는데, 밥을 먹은 후 소화도 시킬 겸 걸어서 방문하기에 좋다. 그런데 막상 용궁역을 본 첫 느낌은, 한 마디로 묘하다!

용궁역 ⓒ정형민

용궁역에서 만난 김연숙(왼쪽 두번째), 김연주(왼쪽 세 번째) 자매 가족 ⓒ정형민

용궁이란 이름 때문인지 별주부전의 주인공들을 테마로 한 기념물과 벽화가 역을 장식하고 있다. 필자는 옛 용궁역의 모습이 잘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아이들이 꽤 좋아할 것 같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디선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서 바라보니, 3대로 이루어진 대가족이 화기애애하게 역사를 둘러보고 있다. 정겨운 모습이 보기 좋아 역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드린다. 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알고 보니 자매인 언니 김연주 씨와 동생 김연숙 씨가 가족을 대동하고 모였다고 한다. 동생네 가족은 가까운 상주에서, 여동생네 가족은 멀리 서울에서 내려왔다. 명절이 아닌데도 가족들이 함께 다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용궁역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 가족이 와서 기념 촬영을 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그런데 모두 열 명이 모였다는데, 남자 어르신 세 분이 사라지고 없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 어르신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는 모습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용궁시장 ⓒ정형민

장날이면 어깨를 부대끼고 다닐 정도로 북적였던 용궁시장 ⓒ정형민

# 호시절의 용궁을 기억하는 시장제유소

용궁역을 구경한 후 향수를 자극하는 거리를 지나 용궁시장으로 이동한다.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구한말까지만 하더라도 '용궁현(당시 용궁군)'은 지금의 용궁면뿐만 아니라 풍양면, 지보면, 개포면, 그리고 의성군 신평면과 문경시 영순면을 포함할 정도로 큰 고을이었다. 하지만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예천군에 편입되면서, 구읍면과 신읍면 지역만 용궁면에 속하게 되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용궁 장날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우시장도 아주 유명했는데 안동, 상주, 영주, 문경에서 소와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기차도 타고, 버스도 타고, 나룻배도 타고 용궁시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옛날에는 용궁 우시장에서 소를 사서 한양까지도 몰고 갔다고 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시절에는 극장도 있었다. 이곳 어른들께 용궁 장날에 대한 기억을 물어보면 대답이 한결같다.

시장제유소 ⓒ정형민

"너무 사람들이 많아서 어깨를 부대끼지 않고는 다닐 수가 없었지."

"서울의 만원 지하철 타봤나? 그 모습이랑 똑같았다니까."

하지만 지금 옛 용궁시장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옛날에는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만, 이제 오일장이 서도 손님보다 물건 파는 상인들이 더 많다고 한다. 그나마 용궁시장의 옛 모습이 조금 남아 있는 곳이 '시장제유소'다. 용궁 시장 안에 자리 잡은 '시장제유소'는 단골식당과 함께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가장 많이 치른 곳이다.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곳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 역사는 훨씬 더 길다. 참기름집을 지켜온 임숙자 사장님의 증언에 따르면, 1980년에 가게를 인수했다고 한다. 그때 참기름집을 하시던 분이 할머니였다고 하니, 이 참기름집의 역사는 40년에 몇 십 년을 족히 더해야 하리라.

대를 이어가고 있는 시장제유소 ⓒ정형민

사장님은 참 마음씨 좋아 보이는 인상으로, 낯선 이방인을 다정하게 맞아주었다. 방송에 많이 출연한 탓도 있겠지만, 원래 천성이 그러해 보였다. 조심스레 나이를 여쭈어보니 50년생이라고 하여 많이 놀랐다. 진짜 동안인데, 방송에 출연했던 사진을 보니 연예인처럼 모습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산골 출신이란다.

혼례 후 용궁시댁에서

젊은 날의 임숙자 사장

23살 때 인접한 문경의 산골짜기 제일 높은 동네에서 용궁으로 시집을 왔다. 그렇게 세 살 위의 남편(이영형)을 만나 2남 1녀를 낳고 지금까지 참기름집을 하고 있다. 2009년에 가게가 '1박2일'에 나오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지만, 여전히 손님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해서 기름이 훨씬 고소하기 때문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름 짜는 값으로 3되에 5천 원을 받고 있다. 한때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서 근심이 컸지만, 지금은 제유소 일을 돕고 있는 막내아들(이성일 씨)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주변에 좋은 아가씨 좀 소개해 주시구려!"

1960년대 용궁 들녘

# 가업으로 대를 잇다.

성일 씨는 6년 전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제유소 일을 돕기 위해서 내려왔다. 이제 성일 씨가 '시장제유소'의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고, 사회복지학을 공부해서인지 지역을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한다. 필자가 제유소를 찾은 날, 멀리 서울과 수원에서도 기름을 짜러 왔다. 방송 덕분에 세간에 알려져서 장사가 더 잘 되겠다고 하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방송에 나가서 멀리서 주문도 오고 장사가 잘되기는 해도 그래도 옛날이 좋았어. 그때는 영주에서도 사람들이 완행기차를 타고 왔지. 기차표가 오백 원이었어. 손님이 많아서 밤새며 기름을 짰지. 그때는 시장이 번성해서 참 좋았는데, 지금은 시장이 죽어 버려서 너무 안타까워."

그래도 태풍이며 홍수도 없는 용궁이 좋은 동네라고 말한다.

"농사가 잘되잖아. 그럼 됐지 뭐, 옛날보담 살기도 좋아졌고."

그러면서 또 역시 우리 어머니들은 나이가 들어도 자식 걱정뿐인지

"근데 그렇게 방송에 출연을 많이 했는데, 중매 서는 전화 한 통이 없네."

용궁극장 간판을 그리던 아저씨가 '시장제유소' 간판 글씨를 써주었다고 한다. 극장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교회가 들어선 지도 세월이 꽤 지났다고 하니, 이곳 간판이 용궁극장과 연결돼있는 유일한 유산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시장제유소'는 성일 씨가 가업을 잇고 있으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오일장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시장에 계시는 모든 분이 즐겁게 장사를 하시는 날이 오기를!

용궁시장의 산 역사, 문화당 ⓒ정형민

# 역사 속으로 곧 사라질 문구점 '문화당'

용궁시장 입구 쪽에 오래된 간판 하나가 눈에 띈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코흘리개 시절, 학교 앞에 있던 문구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세월을 거스르고 서 있다. 가만히 가게를 들여다보니,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노총각 정원(한석규)이 아버지(신구)로부터 물려받은 초원사진관이 오버랩 된다. 하지만 문화당에는 아흔이 넘은 어르신만 계신다. 서종교 옹의 지난 세월 얘기를 들어 보았다.

어르신은 상주 출신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신 후, 고향인 함창면에서 면 서기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옆 동네인 문경 점촌으로 이주했다. 그때가 30대 초반 무렵인데, 그곳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친구 분의 권유로 용궁에서 서점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용궁으로 건너와서 바로 가게를 여셨으니, 그 세월이 50년을 훌쩍 넘었다. 용궁에서 가게를 하다가 할머니를 만났는데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50년 세월을 함께 살다가 5년 전 할머니께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어르신은 돋보기가 없어도 책을 읽으실 만큼 시력은 좋지만, 귀는 많이 안 들린다 한다. 보청기가 있지만 불편한지 사용하지 않아서, 대화를 위해서는 계속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4~50년 전에는 물건을 하러 자주 서울이나 대구를 왕래했는데, 대구로 갈 때는 강변까지 가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차를 탔다고 한다.

문화당 서종교 사장님 ⓒ정형민

안타깝게도 60년 가까이 용궁을 지켜온 문화당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다. 연로하신 데다가 손님들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여서 곧 가게 문을 닫을 예정이다. 어르신은 오랜 세월 서예를 해오셨는데, 국내는 물론이고 대만에서도 전시회를 열었다. 필자가 방문한 날에도 며칠 뒤 문경에서 열리는 전국 백일장 대회에 참석할까 고민 중이었다.

어르신의 앨범을 구경하는데, 그 흔한 젊은 시절 사진이 하나도 없다. 어르신 연배의 세대가 그렇듯,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는 격동의 세월은 사진 한 장 찍기도 녹록치 않았으리라.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던 할아버지는 자녀들이 성장한 후에야 제주도로 뒤늦은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2007년 만파루에서 삼일절 기념식 축사를 하는 모습

뒤늦게 간 제주도 신혼여행. 왼쪽에서 두 번째

제주도 신혼여행 때. 50년 세월을 함께 살다 5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

#동학세대 어르신이 남긴 말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시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어르신께 바라시는 일이 있는지 여쭸다. 그런데 되려 내게 한 말씀 툭 던지길,

"젊은이, 젊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시게."

어머니가 내게 해주는 말씀이랑 똑같다.

"아들아, 세월 잠깐이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라."

평소 어머니가 말씀하실 때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르신이 같은 말씀을 하시니 두 분 세대의 힘겨웠던 삶이 투영된다. 겪어보지 못했던 그 무게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렇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폐허가 된 이 강토에서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온몸을 내던져야 했다. 당신들께서 하고 싶은 것 다 참으며 온 삶을 희생하셨다. 그렇게 젊고 고왔던 청년과 아가씨는 할아버지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 버렸다. 결국, 우리에게 던지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시게."는 당신들의 흘러가 버린 세월에 대한 회한이오, 동시에 헌신적인 삶에 대한 당당한 고백인 셈이다.

1989년 대만의 서예국제교류전에서. 가운데가 서종교 옹

서예 이야기를 이어가던 어르신이 문득 질문을 던진다.

"동학 알지? 최수운 어른, 최시형 어른, 들어봤지?"

어르신은 오랫동안 동학 활동을 하셨다고 한다. 고향인 상주의 동학 교당이 1924년에 설립되었으니, 동학의 성장과 쇠락을 지켜보았다. 평생을 함께했던 가까운 친구들도 모두 동학에 몸담았다고 한다.

"이제 아무도 없어. 선배들도, 친구들도 아무도 안 남았어. 이제 나뿐이라네."

예천군 용궁면 읍내에 가면 ‘문화당’이 있다.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문화당 문구점을 살릴 수는 없을까? 아니, 문을 닫기 전까지 가게에 남아 있는 문구품이라도 다 팔 수 있으면 좋겠다. 어르신, 건강하십시오!

카페용궁의 최대한 사장 ⓒ정형민

카페용궁 정원 ⓒ정형민

# 토박이가 가꾸는 소박한 '동네 박물관'

다시 큰길로 나와 조금 걷다 보니 '카페 용궁'이라는 간판의 글씨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커피 한 잔도 생각나고, 가게 앞 원목에 쓰인 '동네 박물관, 잿마당'이라는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들어서니 중후한 신사분이 가게를 지키고 있다. 길에서 보는 것과 달리, 가게는 정말 컸다. 뒤쪽으로 예쁜 마당과 함께 대문이 따로 있다. 가게는 두 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한 칸에 장식돼 있는 옛날 사진과 옛 지도가 용궁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소담한 마당에는 예쁜 꽃이 피어 있고, 한쪽으로는 민속품들이 자리 잡고 있다. 눈길을 사로잡았던 '카페 용궁' 글씨는 문화당 어르신께서 써주셨다고 한다.

1970년 무렵 용궁면 철길에서. 학창시절의 최대한 사장(가운데)

회룡포가 내려다보이는 비룡산에서

용궁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대한 사장님은 용궁농협에서 35년을 재직한 후 정년퇴직했다. 갑자기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고 무료해서, 사모님과 함께 카페를 열었다. 카페를 열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주변에서 모두 반대했다고.

"이 시골 마을에 카페를 열면 찾아오는 손님이 있겠느냐고 모두 미쳤다고 했죠."

1978년 용궁면 농협 저축장려 캠페인

농약방이 있던 건물을 새로 단장해서 카페를 열었다. 설계에서부터 인테리어 소품까지 직접 했는데, 그 모습이 용궁 읍내와 잘 어울린다. 처음에는 사모님만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었는데, 곧 사장님도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도시적인 디자인에 이름도 멋지게 지을 법도 한데 사장님은 용궁에 그저 좋은 카페 하나 열어서, 주민들과 여행객들에게 맛있는 커피 한 잔 대접하고 용궁의 역사를 알려주고 싶으셨나 보다. 그래서 가게 이름조차 '카페 용궁'으로 족했으리라. 그는 읍내에 있는 만파루나 용궁현청 건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안타까워했는데, 덩그러니 건물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용궁의 역사를 소개하는 작은 전시관이라도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동아당약국 ⓒ정형민

# 용궁의 감초, 동아당약국

카페에서 나와 '동아당약국'을 찾았다. 문화당과 함께 용궁 읍내에서 아주 오래된 곳이다. 옛날에는 다 그랬듯이 처음에는 '동아당약방'으로 문을 열었다. 마을 분들의 얘기에 따르면, 읍내에서 최고령에 속하는 강대진 어르신(94세)께서 시작하셨는데 지금은 요양 중이라고 한다. 그럼 누가 약국을 지키고 있을까? 약국에 들어서니 중년의 여성분이 흰 가운을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강대진 어르신 얘기를 꺼내니, 시아버지라고 한다. 용궁면에서 시장제유소나 월오정미소와 같이 2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받는 곳처럼 이곳은 며느리가 약국을 지키고 있었다.

"첫 딸 임신했을 때 용궁에 왔으니까, 제가 약국을 한 것만 해도 30년이 넘었어요."

시부모님이 했던 세월까지 합치면 50년은 훨씬 넘었다는 얘기다.

"제가 처음 여기 왔을 때 약방에 뒤주처럼 생긴 금고가 있었어요. 장날에는 손님이 너무 많아서 시어머님이 중간중간 돈을 꾹꾹 눌러주곤 하셨어요. 그만큼 용궁에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때는 바로 옆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사람들도 많이 지나다녔죠."

대구에서 10대와 20대 시절을 보냈으니, 어쩌면 김손희 약사는 용궁 읍내의 지난 3~40년 세월을 객관적으로 지켜보았던 산증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아버지의 약방을 물려받아 대를 잇고 있는 며느리 김손희 약사 ⓒ정형민

"진짜 시골이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마을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아기들 약이 거의 나가지 않아요. 그만큼 젊은 사람들이 없다는 뜻이에요."

그는 가끔 용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문화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게 제일 답답하다고. 그래서 컴퓨터를 켜놓고, 손님이 없을 때는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답답함을 해소한다.

"우리 나이가 되면 어디로 떠나기도 쉽지 않아요. 막상 서울에 가도 사람 살 곳이 아닌 것 같고… 그냥 이렇게 적응을 하며 살아요. 세월이 더 지나면 그래도 지금이 좋았던 시절이 아닐까 상상하면, 그게 참 두려워요."

김손희 약사의 마지막 말이 용궁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용궁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시골 마을이 똑같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조금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백 년이 넘었다는 용궁초등학교로 향한다.

100년 넘은 역사를 간직한 용궁초등학교 ⓒ정형민

# 용궁의 긴 역사, 용궁초등학교

용궁초등학교는 용궁면사무소 옆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제일 먼저 '개교 100주년 기념'이라고 적힌 큰 기념비가 눈에 들어온다. 1912년에 용궁공립보통학교로 개교했으니, 107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개교 당시 교장은 일본인이었고,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인 학생들이 함께 공부했다.

1954년 졸업앨범 속 학교 전경(제공: 용궁초등학교)

단기 4289년(1956년) 졸업앨범 표지(제공: 용궁초등학교)

"용궁공립보통학교 시절에는 조선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이 함께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조선인 학생들은 지금의 중학교 자리에서 공부를 하고, 일본인 학생들은 지금의 초등학교 자리에서 공부를 했다."(용궁초등백년사)

"예천과 점촌 사이에 위치한 용궁은 학생들이 집중되는 교육 중심지였다. 개포, 유천, 지보, 풍양, 산양, 영순, 산북 등지의 많은 학생들이 용궁공립보통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꿈을 키웠다."(용궁초등백년사)

독립지사 장진우 기념비 ⓒ정형민

용궁공립보통학교는 용궁의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용궁 지역의 3.1운동은 용궁공립보통학교를 빼고는 논할 수가 없다. 기미년 3.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때, 용궁의 독립운동가들과 용궁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4월 12일에 용궁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거사가 있기 전날 주동자들이 체포되면서 수포로 돌아갔고, 대부분 징역이나 태형을 선고받아 큰 고초를 겪었다. 용궁초등학교의 솔밭에 자리 잡은 독립지사 장진우 선생의 기념비를 돌아본 후 마지막 목적지로 발길을 돌린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이희상 어르신 ⓒ정형민

# 면사무소 앞에서 만난 백발의 선비

학교에서 나와 만파루로 가려는데, 면사무소 앞에 범상치 않아 보이는 어르신이 보인다. 백발의 수염을 늘어트린 이희상 어르신은 여주이씨 매원공파 종손으로 풍양면에 있는 선산을 지키며 살고 계신다고 한다. 올해 일흔두 살인 어르신은 한학에 조예가 깊으신데, 필자를 보자마자 유학의 중심이 되는 '보본반시(報本反始)' 정신을 강조하셨다.

"자네는 우리 정신문화의 핵심이 뭐라고 생각하나? 보본반시라네.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국가와 조상의 은혜로 비롯된 것이니, 내가 이 땅에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은혜를 갚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

어르신의 입에서 안동과 예천 출신 유학자들의 이름이 줄줄이 등장한다.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서산 김흥락… 어르신은 세 살 때부터 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셨는데, 할머니의 부친이 독립지사인 이규홍(1851~1918) 선생이라고 한다. 이규홍 선생은 김상태 의병장, 석주 이상룡 선생과 함께 경북북부지역의 의병 활동에 동참했고, 이상룡 선생이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할 때에는 군자금까지 대었던 용궁 출신의 독립운동가다. 어르신의 말씀은 유학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어린 시절 이야기로 이어졌다.

"옛날에는 연필 한 자루를 구하려면 계란 한 꾸러미를 들고 가서 바꾸었네."

어려웠지만 참 정이 많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밥을 굶으면 이웃집에서 걱정하니까, 끼니를 거르지 않는 척 일부러 불을 때서 굴뚝에 연기를 피웠지. 그때는 이웃과 함께 밥도 나눠 먹고 친구들과 도시락도 같이 먹곤 했었지."

어르신은 마지막으로 '충즉진명(忠則盡命)'이라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주었다.

"효도는 마땅히 있는 힘을 다해야 하고, 나라에 충성할 때에는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뜻이네."

말씀을 듣는 내내 얼굴에서 열이 났다. 지방에 살면서도 지역의 역사에 대해 무지한 것도 부끄럽고, 꽃다운 나이에 독립 만세를 부르다 온갖 고초를 겪었던 선조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어머니를 생각하니 불효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면사무소 앞 정자에 앉아 잠시 과거로 여행을 하고 온 느낌이 든다. 면사무소에 볼일을 보러 들어가시는 어르신을 한참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만파루로 향한다.

만파루. 용궁면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있다 ⓒ정형민

만파루 ⓒ정형민

독립운동기념비 ⓒ정형민

# 황목근이 지키고 선 용궁

만파루는 원래 구읍이 자리했던 향석리에 있었는데, 조선 중기에 대홍수로 향석리가 물에 잠긴 후 용궁현 관아와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하지만 1945년에 낡아서 무너졌는데, 1987년 용궁면 주민들이 고장의 정신적 뿌리를 되찾자는 뜻으로 힘을 모아 복원하였고,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들과 3.1운동을 기리는 독립운동기념비를 함께 세웠다. 독립운동기념비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누각 앞에 서니 용궁 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미년 그날의 하늘은 어땠을까? 오늘처럼 푸르른 하늘이 조국 강토를 지켜보지 않았을까?

용궁향교 ⓒ정형민

황목근 가는 길 ⓒ정형민

황목근 ⓒ정형민

황목근에서 바라본 들녘 ⓒ정형민

용궁이 고향은 아니지만, 며칠 용궁을 둘러보는 사이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마치 40년 전 내 고향 의령읍내로 돌아가 명절에 거리를 돌며 마을 어른들께 인사를 드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동네를 한참 더 돌아다니고 싶다. 계절이 바뀌면 꼭 다시 오고 싶다. 문화당 어르신의 허약하지만 부드러운 손을 붙잡고 인사부터 올리고, 읍내와 시장을 휘 돌아보고, 뜨끈한 국밥도 한 그릇 훌 말아먹고, 따듯한 커피도 마시고, 터줏대감 황목근 아래서 바람 소리도 듣고, 만파루에 올라 푸르른 하늘도 마주하고 싶다. 그때는 문이 잠겨 밖에서만 바라보았던 용궁향교도 제대로 둘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 (글/정형민 makalu21@naver.com)

  2019-10-04 12:57:25 / 안동시공동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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